다시함께상담센터 활동가의 삶과 그 속에 녹아있는 활동 이야기, 활동 중 겪은 인상적인 경험,
그리고 활동가들은 일상 속에서 어떤 고민을 하는지에 관해 이야기하는 편지입니다.
* * *
안녕하세요, 님!
이번 이웃집활동가에서는 오랜 활동 경험을 가진 활동가의 이야기를 준비했습니다.
긍정과 희망으로 가득찬 활동가의 편지를 읽으니 추운 날씨에도 열정이 가득 생기는 것 같아요.
추운 날씨 건강 유의하시기를 바라며, 2023년 마지막 이웃집 활동가의 편지를 전합니다.
긍정 이선생의 반성매매 일대기
이선생
따뜻하고 시리던 유리방 냄비 밥
2005년 부산 완월동 성매매 집결지에서 이 긴 여정은 시작되었습니다. 집결지 아웃리치를 함께하면서도 제가 한밤중에 밖에 나와 언니들의 긴급함을 해결하게 될 지 그때는 몰랐습니다. 그러나 꽤 여러 번 언니들은 업주로부터 그리고 구매자로부터의 SOS를 보냈어요. 그때마다 작은 유리방 틈을 비집고 들어가 (당시 겨우 스물다섯!) 불안과 걱정스러운 마음을 잠재워주던 냄비 밥을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아웃리치를 하는 저에게 들어와서 밥을 먹고 가라던 언니들의 따듯하고 시리던 손끝이 여전히 잊혀지지 않아요. 추운 겨울 영등포 성매매 집결지 아웃리치를 할 때 마시고 가라던 따듯한 물 한잔을 잊을 수 없는 이유도 그런 것이겠죠?
성매매 근절을 향한 서울 상경기
어떤 언니가 그랬어요. “우리를 위한다고 하지만 너도 뭐 먹물이잖아.” 하고요. 서울에 상경하여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성구매자를 마주치는 것도 힘들고, 업주의 악다구니를 듣는 것도 화가 나고, 언니들의 괜찮다는 말도 힘이 안 될 때, 그렇게 힘들 때가 활동가들에게도 있거든요. 게다가 연대 활동은 도통 헷갈리고, 성매매 방지 활동가에게 어떤 교육을 해야 도움이 되는지도 잘 모르겠고, 전국 단위의 성매매 방지 네트워크는 또 얼마나 중요한 사업인지.. 이것저것 정신없이 성매매 근절이라는 화두를 위해 먹물이 되지 않도록 현장에서 바짝 정신 차리고 일한 시기였어요.
* 먹물: 배움이 많은 사람이나 글을 잘 쓰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공부깨나 한 사람을 얕잡아 이르는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늘 푸르던 10대와 함께 철들기
“없었는데, 있었습니다”, “응, 아니”라는 요즘 친구들 어법처럼 전 10대 친구들이 참 낯설었어요. 학교가 싫어서 뛰쳐나왔는데 (대안)학교가 너무 좋다고 하고, 집이 너무 싫어서 나왔는데 집(쉼터)이 너무 따뜻하다고 하는 이 모순된 친구들과 엉뚱한 제가 할 일이 정말 많겠구나 싶었죠. 저의 늘 푸른 청년 시절은 늘 푸른 10대의 자립을 위한 큰 틀을 마련하고자 고심하는 시간으로 가득했어요. 맞춤형 인턴십 프로그램과 검정고시, 수작활동 등 가능성 있는 변화의 시간으로 꽉 꽉 채워 함께 보냈습니다.
디지털 세상에 적당히 화내기
세상은 온라인으로 돌고 돌아 모든 젠더폭력은 온라인에서 시작해서 온라인으로 끝나요. 특히 성매매는 채팅 어플 등을 통한 온라인 성매매 알선이 너무나 방대하고 피해도 막대하여 그런 세상에서 적당히 화내기란 쉽지 않죠. 구글에 출장이라는 키워드만 넣어도 반라의 여성들이 즐비하게 상품화되어 진열(?)되는 시대에 디지털 성범죄는 새로운 영역이라기보다는 확장의 끝판왕, 폭력이 범람한 지경이 된 것이지요. 이런 온라인 세상을 감시하느라 익숙지 않은 시스템을 익히고 배우다보니 제가 뼛속까지 국문과 출신이었다는 사실이 문득 생각났습니다. 젠더폭력 해결하는데 이과 문과가 있나요? 닥치면 다 합니다!
함께 그리고 다시, 20년
성매매방지법은 내년이면 20주년이고, 다시함께상담센터도 올해 20주년을 맞았습니다. 성매매 방지 활동이 점점 어렵다고들 합니다. 피해자는 어디로 꼭꼭 숨어버리고, 성착취 산업은 온라인의 힘으로 점점 비대해지고, 불평등한 거래는 계속된다고요. 이 착취의 역사 안에서 제가 어떤 역할을 했었나 이리저리 궁리해보니 제 삶은 참 많은 사람과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성매매 피해자라고 명명되기도 하는 언니나 친구들과의 연결, 멋진 선배 활동가와 알뜰한 후배 활동가와의 연결. 그리고 아무리 마주쳐도 반갑지 않은 성구매자나 알선자들과의 연결까지도.. 성매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연결이 어느덧 제 일상이 되었습니다.
성매매 방지 활동으로 청춘을 보낸 수많은 활동가에게, 나의 오래된 친구들에게, 함께하는 모두에게 잔잔한 응원을 보냅니다. 그 청춘의 철들지 않는 힘으로 우리의 리듬에 맞춰 어떤 어려움에도 끝까지 가보자고 말하고 싶습니다. (소곤소곤) 곧 진행될 다시함께상담센터의 20주년 행사와 이벤트에도 많은 관심 부탁드리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