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번째, 이웃집 사무원의 이야기
이웃집 활동가는 홀수달 마지막 주에 한 번씩 찾아와 다시함께상담센터 활동가의 삶과 활동 이야기,
활동 중 겪은 인상적인 경험, 그리고 활동가들은 일상 속에서 어떤 고민을 하는지에 관해 이야기하는 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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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 활동가는 어떤 일을 할까요?
내담자와 만나거나 사업을 진행하지 않아도 활동가일까요?
다시함께에 꼭 필요한 활동가, 이웃집 사무원의 이야기를 준비했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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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웃집 사무원입니다. 이 뉴스레터의 이름은 이웃집 '활동가'이고 표준대국어사전에 따르면 활동가는 ‘어떤 일의 성과를 거두기 위하여 적극적으로 힘쓰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저를 이웃집 활동가로 소개해도 사전적 의미로는 큰 무리가 없습니다만... 사람들이 생각하는 활동가의 이미지를 떠올려 봤을 때, 그리고 저 자신이 스스로를 어떻게 그리고 있는지를 되짚어 볼 때 다시함께상담센터 행정지원팀에서 일하는 저는 그 역할처럼 사무원이 더 맞는 호명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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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다시함께에 출근한 날, 기관 소개를 들으며 ‘아, 내가 영역을 바꿔 이직했구나’ 하고 그제서야 깨달은 적이 있습니다. ‘혼자가 아니라 팀으로 회계 업무하고 싶다’는 욕구가 앞서 ‘반성매매 활동’을 하는 ‘사회복지시설’로 이직한다는 걸 놓치고 있었던 거죠. 여성운동 현장에서 다시함께를 마주치는 일이 많아서 내가 아는 곳이라고 착각했던 게 아닐까 이제와 조용히 변명을 해봅니다, 핫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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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 보면 영역을 바꾸는 일은 저에게 낯선 경험은 아니었어요. 대학 신입생일 때 우연히 여성학을 접했던 게 전환의 시작이었습니다. 정상 규범으로는 이해할 수 없었던 수많은 고민을 해소해 주는 매력에 여성학을 복수 전공하고 대학원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연구자로 살 줄 알았는데 논문 주제를 청소년 성교육 강사 양성 과정으로 정하면서 청소년 성교육 매개자로 활동하고, 누군가를 오래 지원하면서 함께 성장하고 싶어 성폭력 피해자 쉼터로 옮겨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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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지 않았지만 반성폭력 운동의 의미를 성폭력 피해생존자들과의 만남을 통해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지원자로서 자기 점검의 회초리를 놓칠 수 없었던 쓰라린 순간들이 겹치면서 소진이 시작되었고 그만둘까 하던 차에 업무를 회계로 바꾸게 되었습니다. 갑자기? 싶으실 수 있겠지만 제가 또 어릴 때부터 각종 모임과 학회에서 총무를 도맡아 한 데다 원리원칙을 고수하는 성향 때문에 ‘너는 관에서 왔냐?’는 야유이자 칭찬을 들어본 적이 자주 있었기 때문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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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직 변경 후에는 당연히 회계만 담당할 수 없었고 행정과 노무, 시설 관리 업무를 함께 해야 했어요. 법인 회계라는 새로운 영역을 공부하면서 신기하고 재밌었지만 혼자 담당하는 일이 다른 활동가들과 업무와 다르다 보니 외롭다고 생각할 때가 자주 있었습니다. 그래서 팀원들과 함께 일하기 위해 먼 길을 거쳐 이 자리로 오게 되었습니다. 여성학 연구자에서 청소년 성교육 매개자, 반성폭력 활동가, 사회복지지설 사무원까지, 페미니즘은 저에게 전환과 확장이라는 길을 열어준 셈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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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성매매 활동 밖에 있을 때 성매매라는 주제에 대해서 어떤 관점과 감수성을 가져야 할지 상당히 혼란스러웠습니다. 사람들은 왜 같은 현상을 두고 성매매와 성착취, 성노동이라는 다른 지향으로 접근하고 갈등을 빚는지, 누구와 어떤 지점에서 연대해야 할지 가늠하기가 도통 쉽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우연히 다시함께에 오게 되면서 조각나 있던 경험이나 생각들을 재구조화하는 계기가 생긴 것 같아요. 페미니즘이 고민 많던 절 지금까지 이끌어준 것처럼요. 말처럼 쉽진 않았지만 다시함께에 있기 때문에 받게 되는 여러 자극은 고민을 조금씩 깊어지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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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는 나이주의, 가족주의, 권위주의를 피하기 위해서 상대방을 가리키는 용어와 호칭을 정확하게 쓰도록 훈련받았는데요. 다시함께에서는 ‘여성들’, ‘언니들’, ‘이모님들’ 같은 표현을 회의에서, 내담자를 만나는 상황에서 쓰고 있었습니다. 진짜 다른 세상에 왔구나, 이 차이는 뭘까 하며 다시 눈을 회계서류로 돌린 채로 일단 덮어 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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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날은 상담팀에서 법률지원 할 때 성폭력 사건 지원 비율이 꽤 높다는 데서 놀랐어요. 내담자들이 스스로를 피해자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도, 그래서 상담원들이 일상적인 호칭이 아니면 내담자를 부르기 어려운 것도, 성매매가 단순한 거래로 여겨져 피해자들이 손가락질 받기 때문이 아닐까? 성매매 상황에서 원치 않는 성행위 강요, 불법 촬영, 금품 갈취, 폭행, 협박, 혹은 구인구직 사이트에서 간단한 일을 빙자한 취업 사기는 내담자들이 ‘선택’, ‘예상’, ‘감당’ 할 수 있는 일일까? 그제서야 성매매가 성폭력을 동반한다는 현실을 설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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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어떤 날은 제가 살던 도시에 ‘완월동’과 ‘해운대 609’라는 성매매 집결지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근현대사 선생님은 왜 일제 강점기에 부산항 근처에 있던 유곽이 현재 집결지로 자리하고 있다는 것까진 알려주지 않았을까? ‘이 집은 대문 만들 돈이 없어서 샷시로 만들었나 보다’ 하고 해운대 집결지를 지나다니던 꼬마는 어떻게 그렇게 오래, 어른이 되고서도 한참 동안 순진할 수 있었을까? 질문은 끝없이 이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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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군 내 “계집 파일” 보도를 보고는 성매매가 더이상 개인 간 거래가 아니라 남성 문화 되었다는 것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불법 성매매 업소 광고에서나 보던 용어들이 동료를 평가하기 위해서 등장했거든요. 그러니까 제가 여성-어른이 되는 과정에서 성매매는 몰라도 될 영역이었고 남성들에게는 성매매 업소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상대를 보는 눈으로 작동했던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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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함께를 통해 만난 세상은 정말로 다시 만난 세계였습니다. 물론 천지가 개벽하고도 제가 주로 하는 일은 회계 및 노무 감사 준비, 지자체 요구 자료 작성, 예산 관리, 각종 법령이나 지침 비교하고 적용, 물 샌 데나 고장 난 물건 수선 의뢰 등등 반성매매 활동과는 그다지 연관성이 없어 보입니다. 때로는 동료들이 느끼는 성취와 보람이 부러울 때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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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진정성 있게 활동하는 동료들에게 안정적인 배경, 그러니까 직장과 급여와 사무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누군가는 기관 운영 분야를 담당해야 할 겁니다. 성매매 피해자 지원에 세금이 투입된다는 건 여성 폭력을 방지하기 위한 국가의 개입인 것이니, 꽤나 중요한 일이기도 하고요. 지루할 때도 있겠지만 자기 전문성을 발휘해서 행정 언어에 현장 상황을 녹여낼 수 있다면 더 좋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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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쓰니 제가 왜 이 자리에 있는지 이제 알 것 같아요. 제 역할을 하느라 한발 물러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동료들의 활동과 증언을 통해 새로운 세계로 향하는 창은 늘 열려 있고 저도 언제나 새로워질 준비가 되어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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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반성매매 활동을 뒷받침 하고 있는 이웃집 사무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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