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번째, 꿈꾸는 활동가의 이야기
이웃집 활동가는 홀수달 마지막 주에 한 번씩 찾아와 다시함께상담센터 활동가의 삶과 활동 이야기,
활동 중 겪은 인상적인 경험, 그리고 활동가들은 일상 속에서 어떤 고민을 하는지에 관해 이야기하는 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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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님
이번 ‘이웃집활동가’에서는
‘3개월만 해보자’는 마음으로 현장에 들어와,
활동가들의 곁을 행정으로 지키고 있는
한 사람의 이야기를 나눕니다.
성착취 피해 청소년들과 마주한 시간,
무력감과 자책을 지나 다시 발견한 활동의 의미가 누군가에게도 따뜻한 곁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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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길 위에서도, 곁에 있는 한 사람이 있다는 것 - 2년 전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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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작
30대 초반, 사회복지나 반성매매활동, 여성인권과는 전혀 다른 일을 하며 이직을 고민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어느날 청소년쉼터에서 일하던 학교 선배로부터 ’같이 일했으면 좋겠다.‘는 연락을 받게 되었고, 그 한마디는 제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제가 만나게 될 청소년들은 성착취피해청소년들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이른바 ‘불량청소년’에 대한 막연한 편견과 선입견이 있었기에 두려움이 컸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청소년을 위한 일을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기에 설렘 또한 함께했습니다. ‘그래, 3개월만이라도 좋으니 한 번 해보자!‘ 그 마음 하나로, 반성매매활동의 현장에 겁 없이 뛰어들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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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진심으로 마주한 날들
초보사회복지사였던 저는 성매매 환경에 대해서도, 청소년 지원에 대해서도 아는 것이 많지 않았습니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마주한 청소년들은 '날 것' 그대로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사람은 부딪혀보아야 알게 되는 것 같습니다. 청소년들과 함께 먹고, 자고, 삶을 나누는 시간 속에서 제가 가지고 있던 편견과 선입견은 조금씩 사라졌고, 그들의 삶이 비로소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폭력과 착취 속에서 기댈 곳 없이 둥둥 떠다니던 삶을 살아야 했던 청소년들이 조금씩 스스로 선택하는 연습을 해 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불안과 두려움뿐인 세상이 아니라 안전하고 행복한 세상에서 살아갔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3개월만 해보자' 던 마음은 바램을 품고 5년이 넘는 시간을 그 현장에서 보내게 되었습니다.
내담자를 가스라이팅하던 성인 남성과 분리하기 위한 과정에서 협박성 연락받기도 했고, 그럼에도 다시 그 남성에게 돌아가는 청소년을 바라보며 무기력함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학교가기를 거부하는 청소년에게 불같이 화를 내며 “왜 학교에 가야만 하는지”를 서로 묻고 대답하며 치열하게 이야기 나눴던 날들도 있었습니다, 신규입소자로부터 오해를 받아 경찰 조사를 받았던 일, 밤마다 쉼터를 탈출하는 청소년들로 눈물 흘리던 일도 있었고, 쉼터를 뛰쳐나갔던 청소년이 한 아이의 엄마가 되어 “그때 선생님이 졸업시켜 주셔서 감사했다.” 고백해주던 순간도 있었습니다. 저는 청소년들에게 대단한 무언가를 준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저의 진심을 알아봐 준 청소년들이 있었기에 저 역시 반성매매활동가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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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행정이라는 또 하나의 곁
스스로 삶을 선택해 본 경험조차 없이 권력과 권위 앞에서 휘둘리기만 했던 청소년들이 스스로 힘을 찾아가고, 자기만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일은 제게 보람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더 잘 하고 싶었고, 더 도움이 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잘해내고 싶은 마음이 커질수록 저는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욕심은 컸지만 스스로 기대한 만큼 해내지 못하는 모습에 자주 좌절했고, 나의 열심과는 다르게 청소년들이 다시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며 무기력함과 자책속에 작아져갔습니다.
내담자와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관계는 깊어지고, 그들의 필요를 이해하며 지원하는 데에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그만큼 행정업무를 감당할 시간은 부족해집니다. 좌절과 자책속에 어느 순간부터 내담자를 만나는 일 자체가 부담으로 다가오기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내담자를 만나는 업무는 다른 활동가들이 더 하게 되었습니다. 그에 대한 미안함이 있던 저는 동료들이 미처 챙기지 못한 행정업무를 채워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행정업무에 익숙해졌고, 끝이 보이는 업무와 하나씩 정리되어 가는 과정은 내담자를 만나는 일과는 또 다른 뿌듯함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내담자를 지원하는 일이 잘 돋보이기 위해서는 그 뒤에 행정이 단단히 뒷받침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반복되는 시간 속에 퇴사와 이직을 거쳐 지금의 저는 다시함께상담센터 행정팀장이라는 자리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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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다시, 시작
반성매매활동가의 길에 들어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사건과 감정을 지나왔지만, 성착취피해여성들을 위한 현장에서 일하고 싶다는 마음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내담자를 잘 지원하고 싶고,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은 큽니다. 그러나 여전히 잘 할 자신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나는 왜 반성매매활동가로 있고 싶은가?' 에 대해 질문하게 됩니다.
문득 예전에 들었던 질문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당신은 왜 이 일을 하게 되었나요?” 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학창시절 제게 영향을 준 사람이 있었어요. 저도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제가 만났던 내담자들이 만난 사람들은 권력과 권위로 착취만 하던 사람들로 가득했습니다.그래서 저는 세상에는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반성매매활동가로 있고 싶은 이유는 그저 ‘한 사람’으로 곁에 있어주고 싶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생각하는 반성매매활동가는 “내담자 ‘곁에’ 있어주는 사람” 입니다. 그리고 지금의 저는 “내담자 옆에 있는 반성매매활동가 ‘곁에’ 있어주는 사람”으로 반성매매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행정업무는 어디에서나 필요한 일이지만, 내담자를 만나며 행정업무까지 감당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입니다. 동료 활동가들이 현장에서 분노하고, 성매매근절을 위해 치열하게 움직이며, 내담자의 아픔에 함께 아파하며 지원할 때, 저는 그 곁에서 행정으로 힘을 보태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다시 내담자 곁으로 갈 수도 있고, 앞으로도 계속 활동가 곁에 머물 수도 있겠지만, 어느 자리에서든 누군가에게 힘이 되어주는 ‘한 사람’으로 남고 싶습니다. 늘 곁을 지키는 한 사람으로 그렇게 반성매매활동을 이어가고자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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